본문 바로가기
  • 리버럴 아츠 칼리지
  • 헨드릭스 대학교
  • 헨드릭스 캠퍼스에 있는 분수와
유럽 여행

내 여행의 일부: 공항에서의 밤샘. 횡설수설.

by 국제방랑청년 2019. 1. 9.

2019년 1월9일 수요일 새벽 3시 7분. 나는 지금 올랜도 국제공항에 있다. 겨울방학을 맞아 2주간 이탈리아 여행을 끝내고 아칸소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비행기 출발 시각은 오전 7시 9분. 온라인 체크인을 끝낸 상태고 6시 좀 못되서 보안검색만 통과하면 된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난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라지를 주문하고 전기 콘센트가 있는 어떤 테이블에서 이 블로그를 작성하고 있다. 

(올랜도 국제공항의 텅 빈 푸드코트. 테이블이 많아서 좋다.)


이렇게 공항에서 밤을 새거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 나에게 굉장히 익숙하다. 싼 비행기표를 찾다보니 주로 아침 비행기가 많고 보통 국내선이면 2시간 전, 국제선이면 3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잠도 제대로 못잘 거, 그냥 공항에 전날 저녁 늦게 와서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미국에서 난 차가 없고, 공항에 갈 때는 친구들한테 라이드를 부탁하거나 (미국에서는, 특히 버스 하나 굴러다니지 않는 내 동네에서는, 친구들 사이에 이러한 라이드 문화가 흔하다) 보다 큰 도시에 있을 때는 버스를 타야 한다. 

(자고 있는 사람을 찍은 건 아니고, ㅋㅋ 공항 한 가운데에 전시돼 있는 작품이다. 보면 볼수록 진짜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 앞에서는 항상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안 그래도 라이드를 부탁하는 친구한테 미안한데, 고작 잠을 편하게 몇 시간 더 자기 위해 친구들에게 새벽에 데려다달라는 결례는 도저히 범할 수가 없기도 하고, 공항에 가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독서, 일기, 블로그 포스팅, 계획 짜기 등을 하면 집중도 잘 되고 평소에 집에서 하지 않았던 활동을 맘껏 할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공항에서 밤을 보내고 비행기를 타면 불편한 비행기 안에서도 잠이 더 잘오고, 잠을 잘 못 자더라도 피곤한 상태로 비행기에서 내리기 때문에 시차적응에도 도움이 된다. 가장 좋은 건, 여행지에서 숙박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것...

(등 뒤에서는 이렇게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자고 있다.)



여행 중에 돈도 절약하고 일처리도 할 수 있고, 일석이조다. 이 두가지가 여행을 자주 하기 위한 나만의 조건이라고 본다. 여행을 계획하는 데 가장 큰 부담은 돈과 시간이다. 여행을 자주 가고 싶으면 당연히 여비를 절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특히 평소에 꽤 바쁜 일정을 보내는 사람이 여행을 자주 간다면 여행중에 할 수 있는 일처리는 해놔야 여행후의 스케줄이 덜 부담스러워진다. 목적지에서 많은 시간을 공부나 업무에 할애하면 여행의 의미가 사라진다. 반면 공항에서는 어차피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공항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면 수면실이 따로 있지 않는 이상, 짐을 봐야 하기 때문에 잠도 어차피 제대로 못 잔다. 그러면 그 시간을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는 데 쓰고, 비행기에섯 못 잔 잠을 잔다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도 공항에서의 밤샘을 계획에 포함시켰다. 지금까지 공항에서의 시간은 꽤 생산적이었다. 학기 중 못했던 독서, 번역 일도 하고, 이탈리아 문화와 언어에 대해 공부하고, 지난 학기를 좀 돌아보기도 하고, 내년 계획도 세웠으며, 기숙사에 있었을 때 미뤄놨던 잡일들을 처리했다.

즐거웠던 이탈리아 여행이 모두 끝나고 미국에 돌아와 친구까지 만나서 모든 일정이 끝난 지금은 당연하게도 여행 시작때와는 달리 피곤함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아메리카노를 마셔서 정신은 깨어있지만, 몸은 피곤한 상태다.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에서는 공항과 비행기 안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가 대학을 다니는 콘웨이에서 리틀락 공항까지 차로 40분이 걸린다. 월요일 아침 7시에 비행기가 있었고, 라이드를 수소문하다가 일요일 저녁 4시쯤 공항에 데려다 줄 수 있다는 친구를 찾아서 바로 부탁했다. 다음날 회사에 나가야 하는 친구의 스케줄에 최대한 지장을 주지도 않고, 내가 하룻밤 잠을 자지 않으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마냥 좋았다. 


그렇게 리틀락 공항에서 위에 언급한 활동을 하면서 즐겁게 밤을 새고, 시카고를 경유해서 뉴욕으로 갔다. 뉴욕 lga공항에 도착하고, 버스로 1시간 반 정도 거리에 위치한 newark airport에서 로마행 비행기까지는 약 10시간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가는 길에 뉴욕 거리를 잠깐 구경하고, 출국 5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해서 다시 노트북을 켜고 일을 시작했다. 9시간 정도인 로마행 비행기에서는 유독 생각이 많아서 잠을 깊게 자지 못했다.. 그리고 로마에 도착해서 또 3시간을 기다렸다가 3시간 플릭스 버스를 타고 친구네 집에 저녁 9시쯤 도착. 샤워를 하고 친구와 친구네 가족들과 즐겁게 저녁을 먹고 (이탈리아에서는 스페인, 포르투갈과 비슷하게 늦은 저녁을 먹는다)친구와 얘기를 하다가 새벽 3시쯤 잠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에도 그다지 늦지 않은 시각에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친구와 일정도 문제없이 잘 소화했다. 


이렇게 보면 나도 체력이 꽤 좋다. 오랜 비행에 거의 이틀을 자지 못했는데 그렇게 팔팔했던 걸 보면 말이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로마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도 아침 7시로 잡혔기 때문에 공항에서 밤을 새고, 오늘도 역시 아침 7시 비행기로 스케줄이 잡혔기 때문에 공항에서 밤을 새고 있다.... 친구한테 이 이야기를 해줬더니 ‘넌 완전히 공항 체질이네, 터미널이라는 영화 한 번 봐봐, 톰 행크스가 공항에서 몇 달 사는 내용이야 ㅋㅋ’ 라고 말했다. 진짜 나중에 한 번 봐야겠다. 앞으로 여행할 때 굉장한 참고가 될 수도...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지금은 다시 피곤이 사라져 간다. 왜 공부할 때는 이런 체력이 나오지 않는 것인지.. 학기중에는 신경이 예민해져서 잠을 잘 못자면 공부를 못한다. 역시 몸으로 때우는 것보다 뇌를 쓰는 게 더 힘든건 팩트가 확실한 듯 하다.



좋은 점도 많지만 이렇게 무리하게 공항에서 밤을 새는 것은 다른 여행자 분들께 추천하고 싶지 않다. 여행중 또는 여행후 스케줄에 지장을 줄 수가 있다.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하룻밤 정도는 괜찮다고 보지만.. 이렇게 공항에서 4박을 보내는 건 좀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다. 미국에 (특히 아칸소주)에 있을 때는 교통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유럽에서는 공항에서 밤 새는 것을 좀 줄일 생각이다. 새벽에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확실히 있다면, 잠을 조금이라도 자고 가는게 역시 상책이다. 내가 공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미국의 불편한 대중교통, 공항이 가져오는 해외여행의 설렘, 스스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는 학생 신분으로서 부모님께 폐를 최소화하며 여행 계속하려는 나만의 발악과 고집이다.

공항에서 밤을 보내면 위험하지 않냐고 친구들이 많이 물어봤었다. 난 이때까지 공항에서 15-20밤 정도를 보내왔지만 한 번도 위험한 상황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미국과 유럽의 공항에서다). 사람들도 꽤 많이 돌아다니고, 경비원도 순찰을 돈다. 그래서 난 그냥 내가 할 일에 집중했다. 지금처럼 말이다. 물론 사람들이 가끔씩 이상한 말을 걸어올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무시하거나, 태연하게 대답해주면서 상황을 모면하면 된다. 여행이 100퍼센트 안전할 수는 없다.


어떤 이유로 노트북으로는 공항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아 다소 불편한 아이패드 키보드로 타이핑을 하고 있고, 계속된 철야로 집중력이 흐트려져 횡설수설을 한 것 같다.. 그래도 공항에서의 생활은 내 여행의 일부분이니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